[연재소설] 소향전 27 김경수 -소향의 일은 이제 집안일이니 제가 알아서 할 것입니다. 보살님은 밖에 이 일은 내지 않아야 합니다- 비록 알려질 것은 뻔하지만 그래도 시끄럽게 구설수를 만들지 말라는 말이다. -그리고 추석 무렵이나 돼서 한번 발걸음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달포는 남았고 그때쯤이면 제가 보살님께 물어볼 것도 있고 해서……- 둘 사이의 거래는 마무리가 되었다는 듯 하는 말이다.
-그라입시더. 마님이 아를 건사하실끼니 지야 이제 마음 놓고 갈랍니더- 돈이 치마 밑에 들어가자 금방 다시 마님이다.
소향이나 대포아지매 일은 안중에도 없이 빨리 이 집을 벗어나서 얼큰한 탁주 한 사발 들이켜고 가랑이 쩍 벌리고 퍼질러 앉아서 돈 냄새를 맡아보고 싶은 심정이다.
무당은 큰아지매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는 둥 마는 둥 아래채로 내려와 신발이 놓인 방의 문을 열어젖혔다. -야야, 내는 갈 길이 바빠서 갈란다. 니는 그저 아지매 말씸 잘 듣고 그라고 아지매는 정말로 혼자 잘 찾아갈 수 있것나?-
몸은 벌써 대문을 향해 돌린 채로 방안의 소향과 대포아지매를 향해 건성으로 묻는다. 낮은 문설주를 피하느라 고개를 숙이며 나오는 대포아지매는 -벌써 가십니꺼? 저녁인데 주무시고 가시지예?- 고무신을 신으며 말한다. -아이다. 내사 오데 자몬 어떻노? 갈 데도 많고 오란 데도 많테이. 또 보제이- 치마를 펄럭거리며 무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미 솟을대문을 벗어난다.
인사도 할 겨를이 없던 소향도 밖으로 나왔지만 털보무당은 떠나고 둘은 물끄러미 마당에 남겨졌다.
막연한 심정의 대포아지매다. 그래도 여기까지 무당을 의지해서 오긴 왔지만 막상 무당이 휑하니 나가자 텅 빈 집 마당 한가운데에서 무얼 해야 할지 통 모르겠다. 소향을 데려다 주고 에미를 대신해서 말 한마디라도 야물게 남겨서 함부로 소향을 구박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또 건네준다는 돈을 들고 무사히 삼천포까지 내려가는 게 자기의 일인데 여태 그저 저녁 한 끼 때웠을 뿐 어색한 분위기가 도통 똥마려운 강아지 꼴이다.
-소향아. 아지매하고 좀 들어온나- 때마침 안방에서 들리는 소리다.
대포아지매는 소향을 쳐다보고 손을 다부지게 잡는다. 이제 자기가 소향을 위해 안방여자에게 말이라도 건넬 기회가 왔다는 듯 사뭇 근엄한 표정으로 안방에 들어선다.
-보살님이 안 주무시고 가시네예. 바쁜 모양입니더- 제법 멀찍이 둘이 자리를 잡는다.
-늘 바쁘신 분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그래도 달포나 있으면 또 오시기로 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아주머니께서 먼 길에 소향을 대동하고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소향에미한테도 전해주세요. 이것도 인연인데 제가 소향을 동기간 같이 잘 데리고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요. 그럼 아주머니께서는 내일이라도 가실 겁니까? 아니면 며칠이라도 계실 겁니까?-
있을 일이 뭐있으랴? 그저 인사치레로 남기는 큰아지매의 말일 뿐, 남아있는 거래를 종결하고자 하는 큰아지매의 확인일 뿐이다. -지야 뭐, 소향이 있을 데도 봤고 또 아지매도 봤으이 됐심더. 낼 가야지예. 지도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 비워둘 수가 없습심더-
한손으로는 여전히 소향의 손을 잡은 채 대포아지매는 머리를 조아려대며 말한다. 알게 모르게 큰아지매의 기세에 눌려있는 형세다. 어쩌면 대가의 위세에 주눅이 들었거나 또는 계집 팔아먹는 형편에 설 수 없는 얼굴의 어설프고 난처함일 수도 있다. 비록 자기 딸은 아니지만……. 갑자기 밖에서 시끌거리는 아이들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부인!- 부르는 소리만 안방에 흘리고 태섭은 댓돌 위에 신을 벗고 마루에 올라서며 뒤에 따라오는 두 사람을 보며 -들어오시구려. 요기라도 하셔야지. 때가 됐는데- 큰아지매가 일어서서 치마폭을 잡고 마루로 나서보니 광수와 재수가 큰아버지를 따라 이미 마루에 올라와있고 그 뒤에 낯익은 두 사람이 서있다. 영문을 모르는 큰아지매다.
문경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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