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문경 신재식 (주)삼정솔루션 임원 재직 중, 문경 가은출생 출향인 얼마 전 내가 졸업한 농암초등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여러 가지 뜻깊은 행사가 치러졌다. 사진전, 기념석 건립 등은 이미 성황리에 끝났고 마지막 사업인 기념 책자 발간을 위해 김병중 씨를 비롯하여 몇몇 분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고 해도 문서로 만들어진 책자의 중요성은 굳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대다수 사람이 공감하는 바이다. 다른 기관의 기념행사를 많이 보아왔지만, 자취가 뚜렷한 기록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곳곳에 묻어있는 먼지 같은 흔적이나 바람 같은 이야기, 눈감아도 코를 자극하는 냄새와 같이 그야말로 여기저기 온 동네, 벽장에, 서랍에 산재한 스토리들을 모아 멀리 견훤 시절의 흔적부터 작금에 오르내리는 모든 자료를 집대성해서 향후 백 년을 뒤로 보고 준비하겠다는 열정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다.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다니고 이후 계속해서 객지에서 거의 8할 이상을 지내왔으니 나 같은 사람 출향인이라는 말이 적절할 것 같다. 수구초심이라고 바쁜 일상을 이어가다가도 문득 떠올려지는 기억의 편린들을 살펴보면 그 배경에 어린 시절에만 보낸 고향의 옛 풍경이 그대로 깔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향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그리고 가장 마음에 와 닿은 풀이지만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으로 되어있다. 어릴 적 맛본 음식의 맛이 미뢰에 남아서 맛있다 맛없다 구분을 좌우하듯이 고향이라는 그 기억의 힘은 나이가 들어감에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자주, 더 진하게 되살아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꿈에서도 보게 되는, 지금이라도 그림으로 그리라면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골목길, 정자나무, 도랑, 사투리…. 그 모든 것이 다 고향이고 그 모든 개개인의 기억을 잘 모으고 정리하면 훌륭한 자산이 되기에 그 산물에 더욱 기대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SNS에 친구들이 올려주는 내 고향 문경 소식이 정겹고 새로운 기억으로 잘 각인이 되는 즐거움이 있다. 확실히 맛집 소개보다는 문희와 경서로 새로 제정한 로고와 마스코트, 유명 연예인 누구누구를 홍보대사로 임명했다는 소식 같은 뉴스들이 반갑기도 하고 관심을 두고 읽어보게 된다. 어릴 적 기억으로 만 보면 단오나 칠석, 정월보름, 가을 시제 같은 날들의 추억도 많았지만, 요즈음은 베이비 붐 세대 대부분이 객지에 나가 터전을 잡다 보니 다른 지방도 마찬가지이지만 대도시나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인구가 지난 3, 4십 년 전과 비교하면 반토막 이상으로 줄어들었고 출산 소식은 뉴스가 될 정도라 소멸도시네 뭐니 하는 무시무시한 수식어들이 생기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조상님들을 모신 산소에 벌초, 사초를 하는 때에 명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찾게 되어 주말 고속도로가 넘쳐나기 일쑤다. 벌써 주말에는 평소보다 많은 차들이 지방을 향하고 있고 추석을 앞둔 올해도 예외가 아닌 것같다. 비혼을 선택하거나 혼인해도 자녀를 많이 갖지 않는 세태라 친가 외가 구분 없이 사촌도 귀해지고 고향이라는 개념도 뚜렷하지 않게 되고 있다. 해도 그렇다. 1912년에 제령 된 조선민사령을 시작으로 1960년 제정된 법률이 2008년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폐지되었다. 시. 읍, 면장이 관장하면서 원적과 본적을 유지한 상태에서 일가창립이나 분가, 전적 등을 관리하는 체계였다. 그러나 헌법상 양성평등의 헌법정신에 어긋난다는 헌재 결정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법으로 변경되면서 출생, 사망, 혼인 등으로 가족관계가 발생하거나 변동되는 사항 위주로 호주 중심의 가족 단위 작성에서 개인별 작성으로 바뀌다 보니 뿌리나 조상에 관한 관심이 그만큼 더 멀어진 게 아닌가 한다. 필자도 고등학교 졸업 이후 계속 직업군인으로 서른 번이 넘게 이사 다니다 보니 주민등록상 주소이전이 세 페이지가 넘을 정도다. 자녀들이 어린 시절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 자녀가 태어난 곳이 모두 다르고 주민등록지가 모두 다르다 보니 ‘도대체 이 아이들이 크면 고향을 어디라고 생각할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국방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세 아이의 공통분모가 있는 군대가 아닐까 하고 정리해서 썼던 적이 있다. 과거에는 농경을 기반으로 대가족이 대를 이어 터전을 잡고 생활하다 보니 기억이나 생활환경, 문화, 집안 분위기를 당연히 공유하고 나름 집안 내력을 자랑하는 분위기도 있으니 고향이라는 의미가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출향인들의 자녀들까지는 그래도 부모를 따라 부모의 고향을 자주 따라다니다 보니 누가 정해놓은 것은 없지만 아버지의 고향이 곧 나의 고향이 되고 마음도 자연스레 따라온 게 아닌가 짐작해 본다. 지금도 삐약이 탁구선수 신유빈이나, 영화배우 신하균씨는 부모님까지 한 마을에서 어린 시절 보고 자랐던 분들의 손자녀들이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곳에서 지냈던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지금도 정부의 관료를 임용하고 프로필을 소개할 때 어디 출신인지,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는지를 명시하는 경우가 많아 여전히 뿌리는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이런 기사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주말 각지에 흩어져 사는 모두 오십 줄이 넘은 사촌, 육촌들이 모여 선산에 두루 벌초하고 나면 집안 어르신들과 잠깐 식사 자리를 하고 왔다. 이제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 칠, 팔촌이 되는데 남들이 하는 것처럼 여러 대의 조상님들을 한자리에 모시는 납골탑이나 가족 묘지로 조성하기라도 하면 이마저도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될 텐데 어떻게 될까 하는 기우 아닌 걱정도 미리 해보게 된다. 어쨌든 고향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마음에 깊이 담겨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글자 그대로 더 좋고 경사스러운 일들이 많이 생겨 외지인들까지 더욱 자주 찾게 되는 한반도의 중심이 되는 문경을 기대하면서 이 가을을 맞이하려 한다. 만시지탄이지만 부모님 구존하시든 근거지가 바뀌든 그래도 힘들고 외로울 때 찾아가면 기댈 언덕이 있고 마음이 가는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시경에 나오는 풍수지탄 즉,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부모님이 어디에 계시든 아쉬움이 남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가보고 싶은 내 고향 문경, 문경 파이팅이다. 문경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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