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시장 예비후보 이상일(李相一) 탐구
친근하고, 신선한 후보
설을 지난 시내에는 들어왔던 사람들이 추운 바람에 실려 날아간 듯 조용한 1월 24일. 가장 늦게 출발한 이상일 후보는 그래서인가 가장 바쁘게 보인다. 문경읍을 거쳐 사방 다니다가 시내에 들어온 오후 4시 반. 취재진과 마주했다.
- 나이부터 물었다.
실제는 신축생(辛丑生)인데, 호적에는 1963년생으로 되어 있어 공식적으로 48세다. 집에 나이로는 52세.
- 태어난 곳이?
모전 음지마, 조개실이다. 72세의 어머니가 생가에 사신다. 엄마는 마성면 신현리가 고향인 최정자씨. 동성초등학교 1회다.
- 아버지는?
아버지는 2005년에 70세를 일기로 작고하셨다. 휘자(諱字)는 용자 우자 - 이용우씨다. 아버지는 워낙 자식들 교육에 관심이 높았다. 1953년 문경중학교 1회로 입학한 아버지는 갑자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장이 되었고, 끝내 학업을 포기하고, 6남매의 입을 책임져야 했다. 그래서인가 자기 자식 2남 2녀에게 공부를 시키고자 무던 애를 쓰셨다.
영신들에 댓마지기 논에 농사를 지으면서 집에 소 몇 마리, 돼지를 여러 마리 먹여서 아이들 공부를 시켰다. 중앙시장 식당에서 꾸중물을 받아오고, 들로 산으로 다니시며 소꼴을 베 왔다.
그래도 자식들 공부시키기가 버거워 큰 누나를 왕태골 고씨 문중으로 일찍 시집보냈다. 그리고 대구에서 신방을 차린 누나들 품으로 자식들을 고등학교에 보냈다.
- 그 이후 공부는 어떻게 했나?
아버지의 바램대로 자식들이 공부를 잘 했다. 이 후보도 마찬가지. 점촌초등학교. 문경중학교까지 우등생을 놓치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반장도 했다. 리더십까지 배웠다.
그리고 공부를 잘해 대구 연합고사에 합격하고, 성광고등학교에 배정받았다. 누나 집에서 기거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꿈에도 그리던 영남대학교 의대에 입학했다.
아버지의 열의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의대생을 공부시키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이 후보는 국가장학금을 받았고, 그런 연유로 의대 졸업 후 의사로서 5년간 공중의로 근무하기도 했다. 군의관 3년까지 합하면 8년을 국가에 봉사한 것이다.
남동생도 공부를 잘해 서울대 물리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미국 캔사스대 의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 공부로는 아버지의 원을 푼 셈이다.
이 후보의 2남 1녀도 미국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코넬대와 콜롬비아대학교에 유학 중이다. 아버지의 유지(有志)를 대를 이어 받들고 있는 것이다.
- 의사 이상일 이야기 좀?
아버지가 이 후보에게 두 가지를 명령했는데, 그 하나는 공부하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향에 와서 의사해라!였다.
두 말없이 1999년에 고향으로 와 구 평안의원 자리에 문경중앙의원을 개원했다. 연로하신 조칠균 원장이 문만 열어 두었던 의원이었다. 그걸 인수받아 1년 반 동안 문경 최초로 24시간 문을 연 의원을 운영했고, 일일 환자 2~3백명이 찾는 의원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1986년 의사고시에 합격한 후, 1991년 외과전문의를 취득했다. 그리고 군의관으로 3년, 국가공중의로 5년 등 내공을 쌓았다. 영남대 의대에서 석박사과정도 밟았다.
그리고 마침내 2006년 서일의료법인을 설립하고 현재의 자리에서 ‘문경중앙병원’을 열었다. ‘오늘을 열심히 살자’라는 마음으로 정말로 열심히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지금 문경중앙병원은 직원 100명에 연 40억 이상의 급료를 지불하는 굴지의 병원으로 일구었다. 외과, 내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마취통증과, 응급의학과 등 6개 과에 일일 입원환자가 80~100명, 외래 환자 3~400명이 찾는다. 시민들에게 친숙하고, 편안한 병원으로 소문났다.
- 그동안 병원경영에만 매달려 왔는지?
그렇지 않다. 그는 자신의 의술을 오지 시민들을 찾아 나누고, 저소득층을 찾아 나누고, 다문화가정을 위해 나누었다. 또 병원이 어렵게 공부하는 지역 후배들을 위해, 어렵게 사는 이웃을 위해 나누도록 경영해 왔다.
그밖에도 이 후보는 틈틈이 지역사회개발 봉사에도 뛰어다녔다. 라이온스클럽, 새마을문고, 수영연맹, 체육회, 범죄예방위원회, 법원조정위원회, 경찰발전위원회, 문화원, 자유총연맹 등 각계에 두루 참여하여 회장도 하고, 회원으로 열심히 활동했다.
그러는 중에 자기계발에도 게을리 하지 않아 작년에는 연세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MBA)를 졸업했다. 친구들 간에 ‘네이버’로 통할 정도로 박학다식 한 것이 우연이 아니다.
- 언제부터 문경시장을 꿈꾸었는가?
4~5년 전부터 지역이 시장 자리 때문에 갈등을 겪는 것을 보고, 왜 저럴까? 고민하면서 자신같이 부드럽고, 투명하고, 온화한 성품이면 갈등 없이 시장을 잘 해내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 갑자기 예측 못할 상황이 벌어져 출마를 결심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평상시 생각해 왔고, 자신의 타고 난 성품이면 이번 도전도 괜찮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 이 후보가 시장이 되어야 할 이유는?
이 부분에서 이 후보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이젠 지방자치가 정말로 지방자치가 되어야 한다. 첫째로 문경에서 뿌리박고 살아온 사람이 시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을 개인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 사람. 이곳에서 시민들과 웃고 웃으며 살아온 사람. 서로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며 정을 쌓고 살아온 사람이 시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문경시민이 그만한 자치 능력도 없는 것처럼 출향인들이 보는지 자못 섭섭한 것이다. 문경시민이 진작부터 자각(自覺)하고 있는 것인데,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문경을 구할 듯이 다니는 출향인들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는 취지다.
그리고 이 후보가 시장이 되어 해야 할 일은 분열된 지역 민심을 치유하는 일이라고 했다. 의사는 눈에 보이는 질병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도 치료할 줄 알아야 진정한 의사가 되는데, 30년 이상 이런 공부를 해 온 이 후보가 가장 적임자라고 말한다.
시정의 맥을 의사가 인체의 맥을 잘 짚어 치료하듯, 문경시 전체를 잘 진단해 부드럽게, 그동안 돌보지 못한 소외되고, 버림받은 일들까지 챙겨서 할 자신이 있다고 자신한다.
화려한 공약(空約)이 아니라, 작지만 꼭 필요한 시정, 약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시정, 시간이 걸리더라도 의회와 전문가, 시민의 의견이 반영된 시정을 펼 사람은 이곳에 뿌리박고 살아온 이 후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 아내에 대해서
그의 아내 김경숙은 동갑내기. 친지의 소개로 만나 몇 년을 사귀다가 1988년 결혼했다. 의사 사위 본다고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다 마다하고, 평범한 가정의 후덕한 사람을 배필로 삼았다. 그 결과 세 자녀 모두가 열심히 무사히 공부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없단다.
- 마지막으로 한 말씀
문경시의 어느 가정과 마찬가지의 가정에서 나고 자랐으며, 지금까지 문경에서 시민들과 고락을 함께 해 왔다. 이런 저를 돕기 위해 남계열 전 문경시국장님 같이 선거에 경험 없는 시민들이 각계각층에서 달려 와 돕고 있다. 천군만마다. 열심히 시민들의 마음을 얻어 보답하겠다.
이번에 대부분의 후보들이 갈라진 민심을 화합시키겠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래서 저는 남을 비방하지 않겠다. 화합시키겠다 해놓고 선거에 임해 또 다시 누구를 비방한다면 시민들이 심판 할 것이라 믿는다.
중학교, 대학교 때 반장, 과대표를 하면서 배운 리더십과 문경에서 병원을 하면서 익힌 경영기법, 각종 단체 활동을 하면서 배운 경험들과 태생적으로 가진 정체성을 잘 접목해 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줄 수 있는 시장이 되고자 한다.
시민이 시장인 시대. 시민이 주인인 문경. 이상일이면 할 수 있다. 새롭고 신선하고 친근한 이상일과 함께라면 못 할 게 없다.
(정리 이민숙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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